김현태 대령 프로필 고향 나이 탄핵재판 707특임단장
김현태 대령은 대한민국 육군의 특수전 전문가로서, 707특수임무단의 단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군사 작전에 참여해왔습니다. 특히, 2023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진입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후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재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출석하여 중요한 증언을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김현태 대령의 프로필, 군 경력, 비상계엄 당시의 역할, 그리고 탄핵 재판에서의 증언 등을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김현태 대령 프로필
- 이름: 김현태
- 계급: 육군 대령
- 출생연도: 1977년 (만 47세)
- 학력: 육군사관학교 57기 졸업
- 임관: 1999년 육군 보병 소위
- 최근 직책: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단장
- 전문 분야: 특수전 작전
군 경력
김현태 대령은 199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한 이후, 특수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다양한 보직을 거쳤습니다. 특히, 해외 파병 경험이 풍부하여 UAE 아크부대장, 레바논 동명부대, 이라크 자이툰부대 등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국제적인 작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특수부대의 정예 부대인 707특수임무단의 단장직까지 올랐습니다.
비상계엄 사태와 707특수임무단의 역할
2023년 12월 3일, 대한민국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였고, 김현태 대령이 이끄는 707특수임무단은 국회 진입 작전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당시 김 대령은 197명의 부대원을 지휘하여 국회의사당 및 의원회관을 봉쇄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작전의 주요 목적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저지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건물을 확보하는 등의 전술적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김 대령은 작전 수행 과정에서 시민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통한 진입 방식을 선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부대원들은 1인당 10발의 공포탄을 휴대하였으며, 이는 훈련용으로 사용되었고 실탄은 별도로 보관되었습니다. 또한, 문 봉쇄용으로 케이블타이를 휴대하였으나, 이는 대인용이 아니었다고 김 대령은 설명했습니다.
작전 중 김 대령은 당시 특수전사령관이었던 곽종근 전 사령관으로부터 "국회의원이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으며, 전기 차단 가능성에 대한 문의도 받았습니다. 이러한 지시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을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12월 기자회견과 입장 표명
2024년 12월 9일, 김현태 대령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상계엄 관련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국회 봉쇄와 침투에 관한 모든 지시는 제가 내린 것입니다."라며 작전 수행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부대원들을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들"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지휘 아래 임무를 수행한 부대원들을 보호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김 대령은 "제가 내란죄 위험에 부대원들을 빠뜨린 것을 사죄하고 싶다"며 깊은 자책감을 나타냈으며, "모든 법적 책임을 제가 지겠습니다. 부대원들은 처벌받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는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과 부하들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발언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재판에서의 증언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서 김현태 대령은 증인으로 출석하여 12·3 비상계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상세한 증언을 했습니다. 그는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의 통화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12월 4일 0시 50분경의 통화에서 "국회의원이 150명 넘으면 안 된다는데 들어갈 수 없겠느냐"는 언급을 전달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때 곽 전 사령관의 발언은 직접적인 명령이 아닌 "들어서 전달하는 뉘앙스"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국회의사당 건물 봉쇄의 의미에 대해서는 의원들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석했습니다. 단전 지시와 관련해서는 "전기라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문의를 받고 지하로 이동해 방법을 모색했다고 진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