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법조계를 넘나들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권영국.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그의 삶은 한결같이 노동과 인권의 최전선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권영국의 학력부터 주요 활동, 정치 도전까지 상세히 정리해본다.
금속공학도에서 인권 변호사로
권영국은 1963년 8월 15일,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당시 삼척군 장성읍)에서 태어났다.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일본 도쿠시마 대학 대학원에서 조성과학을 연구하며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산업기술보다 더 마음을 끈 것은 바로 사람들의 삶이었다. 공학도의 길을 뒤로하고 법학을 공부한 그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거리의 변호사’가 된 이유
법률가로서 권영국의 존재감은 명확하다.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 등을 지냈고, 수많은 노동 현장의 참사와 사건을 직접 맡아왔다.
대표적으로 SPC 샌드위치 공장 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 구의역 김 군 사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고, 용산 철거민 참사, 세월호 유가족 법률 대응까지… 그의 이름은 늘 현장에 있었다.
무료 변론을 마다하지 않고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기초생활수급자에게 힘이 되어준 그의 활동은 ‘거리의 변호사’라는 호칭을 낳았다.
정의당과 민주노동당을 거쳐 대선 출마까지
정당 활동도 오랜 기간 이어졌다. 권영국은 정의당에서 노동본부장, 경주시위원회 위원장, 당 대표를 역임했으며,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상임대표로도 활동했다.
총선에서는 2016년, 2020년 두 차례 경북 경주 지역구에 출마했지만 아쉽게 낙선했다. 2024년에는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전국구 득표 60만 표 이상을 얻었으나 당선되진 못했다.
그리고 2025년, 마침내 그는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며 본격적인 진보정치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했다.
대선 TV 토론에서 드러난 존재감
대선 TV 토론에서 권영국은 특유의 날카로움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준석 후보의 여성혐오적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사퇴를 촉구했고, SNS를 통해 해당 발언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표명했다. 이에 한국여성의전화도 공식 입장을 내고 이준석 후보를 규탄했다.
이날 토론 이후 권영국 후보에게는 6,200만 원의 후원금이 빠르게 모이며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었다. 또한 김문수 후보에게 윤석열 정부의 탄압 문제를 짚고, 이재명 후보에게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는 등 진보 후보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숫자로 보는 권영국의 선거 도전
권영국은 세 차례 선거에 도전했다. 2016년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경주에 출마해 15.9% 득표율을 기록했고, 2020년 정의당 후보로 나섰을 땐 11.5%의 득표율을 얻었다. 2024년에는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4번으로 출마해 2.14%의 지지를 받았다.
비록 낙선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도전은 지지 기반 확대와 인지도를 높이는 데 의미 있는 기회가 되었다.
왜 지금 권영국인가
진보 정치의 설 자리가 좁아진 시대, 여전히 노동 현장에서 법률과 정치로 싸우는 인물은 드물다. 권영국은 거대한 정당의 후광도, 기업 후원도 없이 오로지 신념 하나로 정치에 뛰어든 드문 존재다.
그의 정치는 거창한 공약보다 사람 하나하나의 존엄을 지키는 데 방점을 둔다. TV 토론에서도, 거리에서도, 법정에서도 일관된 메시지를 던져온 그에게서 ‘진짜 진보’라는 목소리를 발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혹시 '정치인 권영국'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다면, 이제는 기억해도 좋을 때다. 화려하진 않지만 뿌리 깊은 사람, 바로 권영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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